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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예로 이어진 인생 제3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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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어둑한 가운데에서도 3월의 캠퍼스는 피어나고 있었다. 만학의 가운데서도 뜨거운 창원대학교 평생교육원 손 글씨 강좌의 모습이 그랬다.  세대차이까지 부정할 순 없겠다만 수업 전 화선지를 몇 번이나 고쳐 피며 붓을 잡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젊은 새내기보단 적어도 순수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누굴까. 바로 서예가 허재 윤판기 선생이다. 선생은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붓을 든 공무원'으로 유명했던 경남도청의 공무원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거슬러 가면, 한 기업의 노동자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서예가이자 폰트개발자로 대학의 강단에 서있다. 마치 막이 하나씩 열리듯 펼쳐진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여 강의실에서 그를 만났다.



선생님, 서예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 초등학교 2학년 때 큰아버지에게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시작했어요. 재능이 있었는지 그때부터 글 잘 쓰는 아이로 자랐어요. 상도 많이 받았죠.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못해 1년 가까이 한문서당을 다녔었어요. 근데 전화위복이라 느끼는 게, 그때 쌓은 실력 덕분으로 제가 서예특기생으로 중,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어요.

그렇게 선생께선 학창시절에서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붓을 놓은 적이 없었는데요, 선생에게 서예는 어떤 의미인가요.

- 그야말로 서예와 함께 학창시절부터 군대는 물론, 지금까지 오면서 한 번도 몽당붓을 손에서 놓지 않고 한결같이 한길을 걸어왔으니까 이제 서예는 취미를 뛰어넘어 생활 그 자체가 되었어요. 눈만 뜨면 일과는 서예로부터 시작된다 봐야죠. 예를 들면, 책표지 글씨, 비문, 현판, 문패, 상량문, 명패, 언론사와 출판. 그리고 창간 기념 축에서, 결혼 사성, 각종 상호 글씨 등 수없이 많은 생활서예 부탁과, 서예 강의자료 준비, 전국의 각종 대회 심사초빙, 제자들의 아호 작명, 각종 초대전 작품의 창작 등 서예로 가득합니다.

'붓을 든 공무원'으로 유명하셨습니다. 공무원 생활 특유의 반듯함이 창작을 해야 하는 서예활동과 괴리는 없었나요.

-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공무원 생활에 있어서 창작활동은 꼭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서로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런 환경 덕분에 감성이 살아있는 손글씨 컴퓨터 서체 한글 물결에, 동심에, 환웅 체, 낙동 강체와 광개토호태왕비체 한자폰트를 개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벌써 그 폰트들을 개발한지 10여년이 지났는데요, 그래도 지금까지 대한민국 곳곳에서 제가 개발한 폰트가 사용되고 있다는 게 정말 뿌듯합니다. 또 이 일로 대한민국 최고공무원으로 선정되어, 전 행정자치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것은 제30년의 공직 생활의 영광으로 남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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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작품에는 컬러가 들어가 화려함이 돋보입니다. 여백의 미로 대표되는 서예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 모든 예술이 다 그렇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영역을 세상에 펼쳐 보일 때만이 위대한 창작 노력의 평가와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세히 보면, 그림 같은 글씨, 시각성이 두드러진 글씨, 색채가 들어간 글씨, 강조할 곳에 색상이 들어가 한 눈에 주목성을 높이거나, 내용을 연상할 수 있는 문자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작품, 디자인적 요소가 가미된 작품 등등으로 기존의 전통서예와는 확연하게 차이 나는 요소들이 많은 새로운 영역의 서예작품을 창작하기 위해 늘 노력해왔어요.

특히 표음문자인 한글에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것 같은데요, 이러한 작업의 매력은 어떤 것인가요?
- 우리 한글의 세계적인 문자에, 감성디자인의 옷을 입히면, 당당히 세계무대에 나갈 수 있다는 확신에서 윤판기 가슴으로 읽는 현대서예-하이그라피 책 출판과 함께, 고전 서예와 현대 서예를 융합한 ‘하이그라피(highgraphy)’라는 나만의 새로운 창작서체로 한글 문자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세계를 향해 뛰고 싶습니다.

광개토호태왕비체, 물결체, 동심체 등 폰트도 개발하셨습니다. 캘리그라피와 달리 정형화된 시스템을 만드는 작업인데, 힘들진 않으셨나요?
네, 제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광개토호태왕비체(廣開土好太王碑體)(KS5601기준 4888字) 손 글씨 한자 폰트를 개발했고,  한글 물결체 · 동심체 · 한웅체 ·낙동강체는 각각 2,350字를 폰트로 개발하여 산업현장과 디자인계의 호평을 받았죠. 정말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글씨는 문화, 예술, 정신, 혼이 담겨있는 그릇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디지털 세상 속에서도 우리 문화와 예술, 정신, 혼을 담는 그릇이 중요하다 생각했고, 그래서 폰트를 개발했어요. 정말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무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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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로 쭉 이어졌다는 점에서는 일관적이라 할 수 있지만, 그의 생활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노동자로 첫 사회생활, 공무원으로 사는 생활, 그리고 새롭게 시작되는 교육자로서의 길. 이렇듯 그는 인생의 봉우리를 넘어가며 도전과 선택에 직면했다. 그런 그에게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선생님의 걸어온 길을 보면 서에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사실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 행복이었습니다. 내가 행복한 것만 바라봤던 거죠. 사실 흔히 생각하는 돈을 기준으로 보면 노동자로서 생활할 때가 수 입적인 면에서는 가장 윤택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이후의 공무원 때보다 몇 배의 금액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제 기준은 저의 행복이었습니다. 돈보다 중요한 건 행복이고 거기서 가치를 찾을 수 있었던 거죠. 그런 면에서 공무원 생활을 통해 제가 가진 장점들로 봉사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고 있어요. 물론 지금 교육을 통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요.

분야는 다르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 소설가 헤밍웨이는 날마다 연필 열 자루가 닳도록 글을 썼다고 합니다. 사람의 영혼을 움직이는 좋은 글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을 하든지 평생을 두고 듬뿍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누구든 프로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날마다 연필 열 자루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의 글씨는 마치 그림이 되고 싶어하는 문자의 꿈을 표현하는 듯하다. 그도 그랬다,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밝아 온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극복하려 하는 욕망이 그의 작품과 닮았다고. 그러면서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지금 행복하십니까.

-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아마 제가 가장 행복하리라 생각합니다.

서예로 이어진 인생 제3막 저작물은 자유이용을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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